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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동안 꾸려오던 알짜 중소기업을 직원들에게 넘겨주고 출장봉사 이발사로 변신한 사람이 있다. 김덕윤(56·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씨가 그 주인공. “연 매출 1300만불(약150억원)로 회사가 잘나가던 때였지요. 1978년에 사업을 시작했으니 창업한지 22년 됐을 때입니다. IMF관리체제 당시의 어려움도 다 극복하고 다시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는 시기였지요.”
김씨는 “큰 부자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번 것에 만족했습니다”면서 “사람들이 돈 때문에 나쁜 짓 하는 것이 싫었고 돈은 많아봐야 자식들만 그르치게 된다는 생각이어서 사업을 그만뒀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부인도 자신의 뜻에 적극 호응해줬다고 했다. “아이들은 다 컸고 사는데 지장은 없으니 집사람도 존중해주더군요.” 김씨는 사업 포기 사실을 발표했으나 누누이 말해왔던 일이라 그런지 직원들은 많이 놀라지 않았다.

“돈만으로 남을 도울만큼 갑부는 못됐고, 또 돈만으로는 진정한 봉사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직접 이발 가위를 들었습니다.”김씨는 2002년 회사를 그만둔뒤 서초구청의 미용반에 등록, 미용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1년반을 다녔다. “젊은 사람은 1년이면 되는데, 나이가 든 탓인지 좀 시간이 더 걸리더군요.”

이발 봉사를 생각한 건 전신마비로 누워있는 조카의 머리를 직접 깎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김씨의 손재주를 아는 부인의 권유도 작용했다. 때문에 당초 봉사 단체에 이동 목욕차를 사주고, 이 차의 운전을 해주거나 목욕봉사를 하려던 생각은 너무 소극적이라는 이유로 포기했다.

“봉사도 쉽지않더라구요. 처음에는 선뜻 머리를 맡기지 않아 깍아줄 사람을 찾기 힘들었고 솜씨도 서툴러 많이 어려웠어요.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다보니 오른 손목 인대에 염증이 나고 허리 통증도 너무 심했지요. 지금처럼 본궤도에 오르는데 2년이 걸렸어요.”

실제 김씨가 이발을 해준 사람들의 수는 첫해에는 한달 평균 40여명. 그러나 숙련기술자가 된 지금은 140여명으로 크게 늘어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이다.

봉사의 주 대상은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의 독거(獨居)노인, 장애인, 노숙자, 영세민들이다. 도움이 필요한 곳을 수소문해 먼저 찾아간다는 김씨가 가는 곳은 서울 용산역, 인천 송현샘 교회, 인천과 일산, 용인 지역 임대아파트의 복지관과 공부방, 서울 방배동의 은파복지원, 구로동 장애인 복지시설인 브리엘의 집 등으로 여기에 40여 명의 재가(在家)노인들의 집까지 합하면 월 10회 이상 출장봉사를 나간다.

인천시 동구 송림동 송현샘 교회의 조정현 담임 목사는 “김씨가 하는 일은 단지 머리를 잘라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며 “먹고 살기 힘든 독거 노인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잠시나마 만들어 준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 고 말했다.

교회에서 머리를 깎던 최동규(72)할아버지는 “저분이 올 때만 머리를 깍아요. 정말 좋은일 많이 하시는 분이예요” 라며 고마워하셨다. 이용세(89)할머니는 “이렇게 깍고 가면 식구들이 더 좋아해. 오면 머리도 깨끗해지고 얘기도 할 수 있으니 너무 좋아” 라며 활짝 웃으셨다.

김씨의 이런 ‘무료’ 봉사는 가끔씩 의도하지 않게 ‘유로’ 봉사로 될 때도 있다.

“한 번은 용산역 앞에서 할아버지 한 분을 이발해드렸더니 의자에서 일어나시면서 손에 무언가를 꼬옥 쥐어주고 가셨어요. 전철무료탑승권이었는데 그것은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받아본 가장 값진 선물이었지요.” 또 “어떤 노숙자가 적지만 받으라며 바지주머니에 100원짜리 5개를 무작정 집어넣어준 적도 있고 노인 분들 집에 가면 무엇이든 주려고 하는 것을 뿌리치느라 매번 고역을 치릅니다” 고 했다.

김씨는 이 일을 시작한 후 주위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출마할거냐’ 라는 말”이라며 “여전히 우리 사회가 봉사하는 것을 순수하게 보지 않는다” 며 씁쓸해했다. 또 노인들은 혀를 차며 “결혼은 했느냐”, “집에 처자식은 어떻게 하고 이러고 다니냐” 며 질책성 질문을 한다고 한다. “그들과의 거리를 좁힐 목적으로 일부러 수수하게 다닌다”는 김씨가 걱정이 되었나보다.

김씨는 “봉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과 규칙성입니다” 라며 “처음에는 말도 잘 안붙이던 사람들이 몇 년을 계속 가니까 이제는 스스럼없이 자기들 속내를 털어놓지요” 고 했다.

지금까지 김씨가 머리를 깎아준 사람은 약 4000여명. 김씨는 “10년 안에 1만 명을 깎겠다는 애초 목표가 조금은 빨라져 앞으로 5년 안에 달성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나이가 더 들면 시골에 정착한 후 노인들의 이발을 무료로 해주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고 했다. 그는 이를 위해 최근 충남의 시골을 찾아 정착과 함께 봉사할 곳을 둘러보고 있다고 했다.